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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렬, 메이저리그 입단거부 속사정

이현경 기자
한국일보 샌프란시스코, 2000년1월26일

“저렇게 뜸을 들이고 생각하는 것만 봐도 가는 게 확실하다”는 세간의 억측과 기대 속에 새 천년 벽두를 후끈 달아오르게 했던 선동렬 선수의 메이저리그 진출은 “메이저리그에는 아직도 욕심이 나지만 마음을 접기로 했다”는 21일 나고야 공식 기자회견을 끝으로 정확히 30일 만에 종지부를 찍었다.

은퇴를 선언한 선동렬 선수의 메이저 진출 이야기는 99년 12월 21일 주니치 드레곤즈의 센트럴리그 우승기념 여행지인 라스 베이거스에서 재미야구인 박진원씨와 박찬호의 에이전트 스티브 김씨가 선(宣)선수의 메이저리그 진출 의사타진으로 불쑥 튀어나왔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이미 은퇴했다”는 입장을 분명히 고수했지만 12월 24일 보스턴 레드 삭스의 극동담당 스카우트 포이트 테빈트씨의 “레드 삭스의 단장이 관심을 갖고 있다”는 공개적인 영입의사는 “30분마다 한번씩 기분이 바뀐다”고 주위에 말할 정도로 그의 마음을 거세게 흔들었다.

결국 2000년 1월 19일 레이 포이테빈트 스카우트, 박진원씨, 스티브 김 그리고 선동렬 자신이 참가한 처음이자 마지막인 도쿄 4자 협상 후 21일 은퇴확인 기자회견을 갖는 것으로 한달여의 긴박한 릴레이에 마침표를 찍었다. 선동렬 선수가 고려대 재학시절부터 갈망했던 메이저리그 입성이 가시화된 시점에서 끝내 은퇴를 관철한 이유를 기자는 두 가지로 분석한다.

첫째, 보스턴 레드 삭스의 격에 맞지 않는 영입추진 방법이다. 보스턴 측은 은퇴 선언한 선수에게 워크아웃을 통해 기량을 점검한 후, 1+1옵션 마이너계약(기존선수를 트레이드 시키고 메이저로 승격시키며 첫해 성적이 만족할 만한 수준이었을 경우 이듬해 계약이 성립)을 골자로 한 ‘선(先) 점검 후(後)계약안’을 제시했다. 장장 15년간 프로생활을 한 백전노장에게 더욱이 은퇴를 선언하고 제 2의 인생을 설계하려는 시점에서 워크아웃 후 계약이란 계급장 다 떼고 시작하자는 이야기와 다름 아니

더욱이 96년 일본 진출 첫해 언론의 집요한 취재, 모친상 등으로 충분한 사전탐사를 하지 못한 채 마운드에 올라 한 경기 2홈런 등 뼈저린 기억을 가진 선동렬로서는 2년 보장이 최소한이자 절대 불가결한 조건인데 1+1 옵션은 38세 노장에게 적지 않게 부담이 되는 항목이었으리라는 관측이다.

둘째는 이상훈에 대한 미안함도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자연스러운 수순을 거쳐 보직을 할당받고 입단한다면 부담이 적겠지만 워크아웃을 거쳐 영입되면 결국 “누가 누가 잘하나”식의 보직결정을 위한 팀 내 경쟁이 불가피하고 최대 피해자는 바로 이상훈이 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이상훈 선수는 메이저에 진출한 것만으로도 삶의 의욕을 느낀다고 했지만 주니치 시절 무사만루 등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구원등판 9회 2사까지 깨끗이 처리한 후 물러나 세이브 포인트는 결국 선 선수에게 넘겨주는 등 굿은 일을 했었다.

고든이라는 막강 구원투수가 부상으로 나오지 못하는 상태에서 혈행장애를 완전히 치료치 못한 이상훈(현재로서는 40-60구 안쪽의 전력투구만 가능)으로서는 팀의 수호신 자리를 차지할 좋은 기회인 것이다. 무리를 해가며 진출할 경우 파생할 문제점 역시 그로서는 쉽게 “한번 해보겠소”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직 뚜렷한 진로를 세우지 못한 선동렬 선수는 화려했던 현역생활을 뒤로 하고 현재 일대파동을 일으키고 있는 선수협회 조직 건에 간접적으로 중재 역할의사를 표명하는 등 국내 야구계에 다각적인 활동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