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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닮았다. 두 사람은 어딘지 모르게 쌍둥이 같은 느낌이다. 우선 둘 다 71 년생이다 그리고 체육 특기자로 같은 대학에 들어가 주목을 받으며 아마추어 시절을 보냈다 그렇지만 이러한 외형적인 공통점보다 무엇보다도 필자의 마음을 끄는 것은 그들의 ‘ 인생역경 과 ‘ 반골정신 ’ 이 두 가지다.
잠시 한번 살펴보자. 화창한 봄날 대학의 교정을 거닐던 필자 앞으로 어깨가 굵은 한 사내가 걸어갔고 곁에 있던 필자의 친구가 어깨를 툭 치며 물었다. “ 혹시 저 사람 누군지 알아 ?” “ 이상훈이라는 야구선수인데 가끔 한번씩 나오는 선수야 라고 묻지도 않았는데 설명까지 해주었다.
스포츠광인 필자의 눈을 피해갈 만치 철저히 무명이었던 이상훈 선수는 그 후 몇 달 뒤 14 연속 탈삼진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며 오랜 무명의 설움을 벗고 화려하게 프로에 데뷔, 20 승 투수로 우뚝 섰다. 그러나 한국 최고 투수라는 타이틀에 만족하지 않고 소속팀을 탈퇴하는 강수를 쓰면서 최정상의 무대 메이저리그에 도전한다 결국 자신의 상품가치를 파악치 못하는 보스턴 레드삭스 대신에 일본 주니치 드레곤즈에 들어간다.
최경주 역시 마찬가지다. 촉망받는 아마추어로 그리고 최상호의 뒤를 이을 한반도 최고의 골퍼라는 찬사에 만족치 않고 인고의 길을 자청한다. 결국 첫무대로 텃세가 심하다는 일본을 선택한다.
이상훈은 일본 진출 원년인 98 년 데뷔전에서 첫 타자에게 홈런을 허용하는 등 2 군으로 강등되는 뼈저린 아픔을 디디고 결국 이듬해 어떤 위기에서도 팀을 구해내는 팀의 실질적 수호신 노릇을 하며 엄하기로 유명한 호시노 감독을 사로잡는다 한편 최경주는 한국남성골프로서는 처음으로 일본 프로투어에서 2 승을 올리며 대번에 기린아로 떠오르며 한일양국 매스컴의 귀한 몸으로 떠오른다.
99 시즌을 마친 이상훈은 안정된 수입과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홀연 단신 미국행을 선언 결국 자신을 버린 보스턴에 보란 듯이 입성한다 이점에서는 최경주가 더 무섭다. 상금하나로만 따지면 웬만한 미 美 프로대회 못잖은 짭짤한 일본 무대를 미련 없이 떠나, 오직 대망 (大望) 을 위해 미프로콘테스트에 응시, 한국인 최초로 출전권을 쟁취한다.
일각에서는 그런다. 메이저 리그는 동양야구와 격이 틀리다고 그리고 LPGA 달리 PGA 의 벽은 호락하지 않다고.
아직 시즌이 시작하지 않은 이상훈은 더 기다려봐야 알겠지만 최경주는 이제 겨우 두 경기만을 마쳤을 따름이다. 도전의식 하나로 부와 안락함을 박차고 나온 이들의 앞날을 지그시 지켜보자.